유명한 그림 중 하나가 바로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이다.
《이삭 줍는 여인들》(프랑스어: Des glaneuses, 영어: The Gleaners)은 장 프랑수아 밀레가 1857년에 완성한 유화이다. 《이삭 줍기》, 《이삭 줍는 사람들》로 해석하기도 한다. 수확이 끝난 밀 들판에서 이삭을 줍는 세 명의 여성들을 그렸다. 현재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밀레는 스스로 가난한 생활을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 인간을 미화하거나 이상화할 수 없었다.
한글 “위키페디아”에서 인용함.
이 그림은 스스로 토지를 소유할 수 없어서 추수가 끝난 밭에서 이삭을 줍는 가난한 세 여인을 화면의 중심을 가득채웠다. 그리고 저 멀리 뒷쪽으로 추수한 곡식을 가득채운 지주의 마차와 높게 쌓아올린 곡식단이 이 세여인과 대비된다. 뿐만 아니라 뒷쪽의 마차의 많은 곡식과 더불어 밝은 화면을 보여주지만, 이에 대비되어 세 여인의 앞쪽 밭은 더욱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여인들의 그림자로 보면 분명 햇볕이 비추어야 할 화면의 앞쪽 아래가 어둡게 보여준다. 그것은 그림자진 세여인의 얼굴과 일치한다.
이 그림을 설명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 그림을 보노라면 성경에서 한 여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바로 룻기의 주인공 “룻”이다. 역사적으로는 BC 11세기말에 쓰여진 글이다. 매우 짧고, 누가 쓴 것인지 불확실한 글이지만 구약성경에 자리잡고 있는 성경이다. 룻기는 단순히 이방여인이었던 모압 여인 룻의 효성과 신앙을 비추어주는 것을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모압 여인 “룻”
룻기의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이란 사람은 아내(나오미)와 두 아들(말론, 기룐)과 함께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엘리멜렉이 사망하고, 나오미와 우 아들만 살게 되었는데, 두 아들은 모압 여인(오르바, 룻)을 아내로 맞이한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두 아들도 죽게 되고, 세 여인만 남게 된다.
이 시기에 베들레헴의 흉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 때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권한다. 성경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강요하듯 친정으로 되돌아가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오르바는 친정으로 돌아가지만, 룻은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오게 된다. 성경은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라고 표현하고 있다(룻1:14). 이후 1장 후반절에는 룻의 마음과 나오미의 마음을 잘 소개하고 있다.
룻기 2장 에서 보아스의 등장과 함께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의 모습이 그려진다. 바로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부자인 보아스가 가난한 룻에게 호의를 베푸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또한 룻기 안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서로 축복하는 장면이 연이어 나온다.
룻기 3장에서는 보아스와 룻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4장에서는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이하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내 임신을 한 룻은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들이 “오벳”이다.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이다. 즉,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이다. 결국 아브라함으로 부터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오벳이 바로 보아스와 룻 사이에 태어난 아이인 것이다.
“이방인”과 “가난”, 그리고 “여인”이라는 세 글자는 당시의 중동지역에서의 그 삶이 어떠했을을지는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역사에 룻의 역사가 한 페이지를 이루고 있다. 이런 룻의 이야기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의 이야기와 겹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당시의 마리아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풍요로움속에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현대 크리스천들은 룻의 이야기나 마리아의 이야기, 그리고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처참한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런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2021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돌아봐야 할 “룻”은 누구인가?
성탄절이 있는 주간의 첫날 월요일 아침에 이 글을 써둔다. 덕분에 오랜만에 구약성경 룻기를 다 읽어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참으로 감사한 성탄주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