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에 학생들의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중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성적분포가 양극화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의과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하는 의과대학에서 2020학년도에 이어, 2021학년도에서도 이런 양극화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성적의 차이가 매우 심하다. 성적에서 중위권 학생들이 줄어들고, 상위권 학생과 하위권 학생이 증가하고, 또한 이들의 성적 차이가 심해졌다. 이런 결과는 절대평가를 해야 하는 의과대학에서는 성적처리에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다. 의예과 2학년으로 편성된 해부학(공식 과목명은 ‘인체육안구조’)과 해부학실습(인체육안구조실습), 그리고 생리학총론(인체기능입문)의 세과목에서 보여주는 성적분포에서 이런 현상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원점수를 기준으로 본다면 전체평균은 예전에 비하여 약간 상향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권 학생들의 증가로 인해 유급생의 증가는 불가피하다. 전체평균과 상위권학생들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하위권학생들이 최하위권으로 몰리는, 일명 중위권 학생의 실종은 유급생의 증가로 이어지고말았다.
비대면수업이 시작되던 2020학년도 부터 나는 개인적으로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이유는 두가지였다.
- 동영상수업 등으로 인해 반복학습이 가능하다.
- 비대면수업이기 때문에 교수들이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쉽게 출제할 경향이 있다.
늘어난 상위권의 학생들은 이 두가지 이유에 맞아 떨어졌다. 그런데 하위권의 증가는 무엇일까? 단순히 ‘자기관리의 실패’에 기인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작년에 연구과제였던 성적과 자존감의 관련성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코로나시대와 같은 비대면수업을 해야하는 환경이 자존감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물론 단순하지는 않을 듯하고,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들을 다 제쳐두고라도 지금의 문제는 유급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냥 올려주면 되지 뭘 고민하느냐?”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의대에서의 유급은 단순히 학점을 땄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의과대학에서의 유급제도는 학점을 따지 못한 학생이 재수강을 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의대에서의 진급은 해당 학년에서 필요한 학습을 골고루 성취해야만 다음 단계의 의학을 배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반대로, 유급은 어떤 특정과목이라도 이수를 하지 못했다면 다음 단계의 의학을 배울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수강이나 재이수의 제도는 없고, 아예 1년을 다시 다녀야 하는 가혹한(?) 상황을 요구받는 것이다.
물론 해부학과 생리학 총론이 의예과로 내려오면서 그나마 의예과에서는 학년유급에서 학기유급으로 바뀌었고, A나 B 학점을 받은 과목은 그나마 인정해 주어서 낮은 학점을 받았던 과목만 이수하도록 제도를 바꾸었기 때문에 약간의 유연성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은 똑같다.
이런 제도와 유급의 의미 때문에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그냥 점수를 주어서 진급을 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교수들은 판단한다. 시험을 한두번 치른 과목에서의 F는 재시험 등의 구제방법이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해부학처럼 10회 이상의 시험을 치르는 경우는 학업성취도가 각 시험마다 비슷한 결과이기 때문에 재시험은 사실 무의미하다고 판단된다.
유급이 예정된 학생들의 요구는 당연히 재시험의 기회를 달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단순히 시험을 치른 후에 진급하겠다는 의미이지 학업성취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해부학교실의 교수들의 생각은 재시험은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전에는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이나, 유급생의 경우에는 내가 나서서 관리(?)를 하곤 했었다. 면담도 하고, 격려도 하면서 지속적으로 학습에 대해 모니터링을 했었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그렇게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내게 고갈되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내가 늙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그렇게 관리를 하는 것은 이미 성인이 된 학생들에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미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의 인생에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학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한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궈야 한다.’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더 젋었을 때 가진 “오만함”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학생을 향한 교수의 사랑이 아닌, 폭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 생각이 아무리 순수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유급생 숫자가 급증하자, 내 마음속에 많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좀 더 관리를 했어야 했나?”, ‘아니지, 자신들의 인생에 내가 끼어들 바는 아니지.’, ‘교수로서 직무유기인가?’, “아니, 부모도 뭐라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못하는 세상에 니가 뭐라고!’ 등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웠던 연말연시였다.
2022학년도는 내게 주어진 또하나의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