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교회에 가지 않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온라인예배를 드리기 전에 이미 나는 바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전북의 시골지역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럴 때마다 글을 써놓았지만 공개글은 아니었다.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섬겼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목사”의 잘못된 목회였다.
비상식적인 재정지출과 신학적 근거가 빈약한 샤마니즘적인 설교와 목회가 문제였다. 그런 목회자를 목회자란 이유만으로 따르는 교인들의 모습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물론 거기에는 오랫동안 그렇게 학습되어온 탓이 크겠지만).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금 고민하는 시간들이었다.
이미 반복적인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내게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그런 일을 통하여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금 고뇌하는 시간들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동안 나는 멍청한(?) 삶을 살면서 그것이 기독교라고 믿고 살고 있었던 셈이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종교화되어 버린 기독교에 대하서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은 어찌보면 내 삶에 대한 고찰의 시간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성경의 신학적 고찰없이 이벤트화되어버린 교회의 예배와 행사에 대하여 다시금 성찰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침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예배는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났다.
부활주일 아침이다.
오랜만에 컴퓨터 책상 위의 먼지를 닦아냈다. 너저분하게 정리되지 않는 선들도 정리를 하면서 이곳저곳 먼지를 닦아냈다. 사용하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으니 먼지가 쌓여도, 선이 꼬여있어도 그냥 지내는 삶의 모습이 어찌 그동안 내가 생각없이 지내온 시간과도 비슷하다. 부활절 아침에 책상위를 청소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
2천년 전에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삶의 풍성함과 그렇지 못한 삶의 모습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의 삶의 모습이 사라져버린 지금의 한국교회의 모습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등이 머리속을 복잡하게 한다.
돈과 권력이라는 두 가지의 탐욕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다시금 내 자신을 들여다 본다. 그 두가지를 버릴 때 진정한 평안과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이미 알기에 그렇게 살아가려는 삶의 회복하기 위하여 오늘도 노력 중인 것이다. 그 삶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부활주일은 그저 부활절예배를 드리는 이벤트를 하는 날이 아니다.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의미에 맞는 삶을 매일매일 살아내는 것이다. 매일 삶이 부활의 삶이어야 하고, 매일 삶이 성탄의 삶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야 말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의 시간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이유인 것이다.
이 땅에서 삶의 이유에 대한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갖는 부활절이 되시길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