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살아갈 우리의 미래, 그 미래에 필요한 것을 나는 “인간다움”이라고 말했다[글보기]. 따라서 앞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생각이 날 때마다 적어두려고 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라는 주제에 대하여 일단 적어두려고 하는 것이다.
“부끄러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인간다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 중 첫번째로 선택한 것이 바로 “부끄러움”이다.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꼈을 때의 숨거나 감추려는 모습, 그리고 얼굴이 벌겋게 되는 모습이 바로 인간이 갖고 있는 부끄러움에 대해 나오는 행동이다.
이것은 동물분류 중 ‘homo’가 붙은 인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인류의 조상부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성경 ‘창세기’ 2장에서 보여주는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 인간에게 나타나는 “벌거벗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순간”이지 않았을까?생각한다. 창세기의 대서사시에서 이렇게 표현한 것에서 나는 인류가 갖는 고유의 특성(진화론적인 입장에서는 ‘인류가 얻게된 형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 하나가 바로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저지르면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은 당연한 것이고, 매우 일차적인 모습이다. 나는 이런 수준의 부끄러움을 말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차원이 높은 부끄러움의 수준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잘못을 한 애완견이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행동을 한다던가, 견주를 피해 숨은 행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수준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뭔가 잘못했을 때 견주로 부터 혼난 것에 대한 기억에 대한 방어기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행동을 보면서 사람들은 웃곤 한다. 개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안다고….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인간이 잘못하거나 죄를 지어서 보여주는 부끄러움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인간이라면(최소 호모 사피엔스라면) 좀 더 진화된(?)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 중 하나가 종교적 회심일 것이다. “죄성을 가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종교적 회심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배움이나 재산의 소유정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거룩한 신 앞에 초라한 죄인의 모습인 자신을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거룩한 신 앞에서 죄인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이런 종교적 회심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배운자, 가진자, 높은자들이 자신이 남들보다 많이 가진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낄 때 비로서 “인간다움”을 가졌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사회에서 보여주는 배운자, 가진자, 높은자들의 행태는 어떠한가?
자신의 가진 것들을 이용해서 가지지 못한 자들을 빼앗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약자들에게 약탈하는 강자의 모습은 인간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에서 우리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강자는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약자들을 착취하며, 사회적 책임은 눈꼽만치도 없는 강자들이 득실대는 사회라면 그것이 어디 인간사회인가? 그것은 약육강식의 자연보다 못하지 않은가 말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다움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사회에는 내가 바라는 높은 차원의 부끄러움은 고사하고,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마져도 변명과 자기합리화, 거짓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인간다움의 상실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비인간화의 모습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에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