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도 양반을 사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양반의 상징은 “부”와 “권력”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추구하는 것도 부와 권력이니 지금도 양반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옛날에도 신분의 상승은 가능했으나 사회적 제도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 제도는 고정되어 유지되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양반을 살 수 있으면 샀다고 한다. 일종의 신분세탁과 신분상승인 셈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부와 권력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이 말은 양반의 뜻을 부와 권력으로만 한정해서 보는 협의적 뜻으로 쓰임). 오늘날에는 양반제도는 없지만 아직도 부와 권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고 있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되길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부와 권력은 분명히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대물림과 같은 경우) 그 모든 것이 사회라는 테두리안에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적 책무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수많은 양반(?)되고 싶은 사람들은 그 사회적 책무성에 대하여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것이 문제이다.
사람이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 이런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본능적이고, 또 사회적이기까지하다. 그러나 그 만큼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고, 책무성에 대한 개념도 키워나아가야 한다.
이런 예가 지금 글을 쓰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내 주변에서 있는 일이니 적어둔다.
A라는 간호조무사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병원에서 우리 조무사(AN, auxiliary nurse)들은 발로 열심히 뛰는데, 간호사(RN, registered nurse)들은 컴퓨터 앞에서 앉아서만 일을 한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런데 왜 간호사와 조무사는 그렇게 봉급차이가 많이 나죠?”라고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을 대학을 나와고, 당신은 학원을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사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의학용어 뿐만 아니라 의학적 지식을 갖고 있지만, 당신들은 그렇지 못하다. 당신을 무시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배경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다. 그들이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그들의 의학적 지식과 스킬은 조무사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안된다. 실제로 병동에서 일이 터졌을 때 당신은 누구를 찾는가? 생각해 보면 답이 보인다. 당신이 하는 일상의 업무는 실제 간호업무의 아주 소소한 일부분일 뿐인데, 그것이 간호업무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오해하지 말 것은, 그들과 배경이 다르다는 말은 그들은 그 4년의 시간을 힘든 노력의 시간들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인정될 때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간호조무사 업무 7년이고, 시험을 통과하면 간호사자격증을 주는 제도를 만들자고 한 사람들은 이런 기본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만일에 간호사 10년을 하고 의사국가고시를 패스하면 의사가 될 수 있는가? 당신은 그런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겠는가?”라고 말한다.
나의 이런 저돌적인 대답에 많이 당황했겠지만 그게 정답이다.
물론 일반회사에서 간부들의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와 인맥 등이 그들의 강점이다. 물론 사회적 책무성을 잃지 않을 경우에 한정한다.
양반이 되고 싶은가?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라. 그리고 사회적 책무성에 대한 것을 잊지마라. 그렇지 않으면 양반이 아닌 찌질한 “졸부”가 된다. 양반이 되더라도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참고로 나는 평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