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세상사는 이야기

김제 부거리 옹기가마

김제 부거리 옹기가마는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 875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옹기가마이다. 이 옹기가마는 조선시대에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6개의 옹기가마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오직 한 개의 옹기가마만 남아 있다. 2008년 8월 27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네비게이션을 찍으면 어려움 없이 올 수 있다. 전체적인 지도로 본다면, 백산은 김제읍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Read More »

아침에 교회페북에 적었다가 지운 글 하나,

세속적인 가치와 적당히 타협을 하다보면, 죄와도 타협을 하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까지도 적당히 타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가치의 “순종”을 원하시지 타협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고 적당히 죄와 타협하면서 그것이 마치 “평화”인양 포장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며, 하나님을 우롱하는 행위입니다. 작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의 수십억의 재정이 흘러들어가는 곳, 돈이 왔다갔다 하는 모든 곳(결국은 사람)에서는 진실을 말할 수 없고, 진리를 말할… Read More »

라멘과 와플

전주 영화의 거리(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근처에는 아기자기한 음식점들이 있다. 그곳에 거의 가지 않는 탓에 세상이 바뀐 줄 모르고, 지난번에 한번 와플을 사기위해 가본 후에 꼭 다시한번 와보고 싶었다. 어제부터 오늘 점심은 라면을 먹기로 했고, 라면집을 찾았는데 바로 영화의 거리 근처에 있었다. 더구나 한번 가봤던 와플집 바로 근처였다. 라면집은 “호시마츠생라멘“이란 일본식 라면 가게였다. 소재지는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2길 46-12’이다. 그리고… Read More »

일주일간의 페이스북 “쉼”

오늘로 만 6일째 페이스북(facebook)을 쉬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글을 쓰지 않고 있다. 하루에 두세번은 들어가 본다. 물론 페친들의 글을 읽지도 않는다. 다만, 내 글에 새로운 댓글이 붙었는지와 교회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적정성을 점검할 뿐이다. 내일이 되면 정확하게 일주일이 된다. 지난 금요일(8월 30일)부터 페이스북을 쉰다고 적어두었기 때문이다. SNS의 시대에 페이스북은 소통의 장인 것은 확실하다. 스마트폰에 최적화되어 있는 인스타그램(instagram)에는 아직… Read More »

페이스북에 써놓았던 글을 간혹…

페이스북에 써놓았던 글을 간혹 읽어보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어?’라는 자문을 하곤 한다. 오늘도 그랬다. 페이스북에서 같은 날짜의 과거 글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는데, 그 글들을 그 날이 되면 볼 수 있다. 오늘도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와 다시 sharing을 해놓고 블로그에 하나 남겨 놓는다.

“자유하라!”

요즈음 내 자신에게 외치는 소리이다. 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지금도 자유스러운데 얼마나 더 자유스러울려고 그러냐?”라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맞다. 나는 지금까지 자유롭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자기 멋대로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짜여진 삶의 틀 안에서 내 스스로 얽매이지 않고 살아왔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김형태 교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물론 그 말에 내 스스로 위축되는 부분이 있다. 그만큼 자유스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고… Read More »

라면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땡볕이 계속되는 요즈음, 뭔가 입에 땡기는 것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오늘 오징어를 넣어서 라면을 먹자”라고 약속을 미리 해두었다. 라면을 즐기지 않는 아내도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다. 원래 계획했던 오징어 라면은 포기하고, 그냥 당근과 양배추를 넣은 일반 라면을 먹기로 했다. 왜냐면 단백질로 “만두”를 이미 쪄두었기 때문이다. 예전보다 라면을 좀 더 익힌다.… Read More »

홍화씨 채취

지난 5월 31일에 두번째 뿌린 홍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처음에 뿌렸던 홍화는 진디물의 공격에도 살아남아서 꽃을 피었다[글보기]. 두번째 뿌린 홍화도 진디물의 공격이 있었으나, 초기에 우유를 뿌려서 진디물을 제거한 탓에 잘 자라주었다. 그리고 며칠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따라서 컨디션이 별로 좋지 못했던 처음 심었던 홍화를 뽑기로 했다. 이미 꽃이 지고, 마르고 있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씨앗을 채취할 것으로… Read More »

지정의 균형잡힌 신앙

내 삶의 모토가 “지정의(知情意) 균형잡힌 삶의 추구”이다. 크리스천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나는 이미 여기에 대한 글들을 써왔다. 크리스천의 지정의(知情意) 지정의(知情意)를 생각하다. 균형잡힌 삶 지정의의 사전적 의미를 찾다 어제 기도모임 중에서 하반기 성경공부에 대해 열심히 홍보하던 중 어떤 권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아침까지 내귓속에 맴돌고 있다. 한가지는 “성경공부를 많이 하면 머리만 커진다.”라는 말이다. 그 권사님의 우려를 모르는 바 아니다.… Read More »

자녀를 위한 기도

요즈음 세상이나 방송에서도 “자녀”라는 단어를 넣으면 일단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아 놓는다. 특히 “자녀교육”이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교회에서는 어떨까요?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자녀가 귀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있겠습니까? 조금 전에 “자녀를 위한 기도”라는 검색어를 넣어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많은 교회에서 이런 제목으로 올라온 글들이 보인다. 얼마전 부흥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기도하면 머리가 열리고 영특해진다”라는 식의 표현으로 많은 부모들이 앞다투어 앞으로…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