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식사 후에 반일연가를 내서 아내와 함께 시골에 있는 요양병원에 계신 장모님을 뵙고왔다. 뵙고 돌아오늘 길, 딴 생각을 하다가 고속도로 진입로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로 마음이 찹찹하고 복잡했다.
구례를 벗어나면서 “전주로 모셔야 되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 아내는 말이 없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꽉 차있는 듯 하다. “저라고 왜 그 생각을 안했을까요?”라고 짧게만 답을 한다. 길을 잘못들어서 한참을 헤매이다가 고속도로에 접어 들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다. 주로 나눈 내용은 어떻게 조금이라도 걷게 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지난 겨울에 골반뼈 골절로 요양병원에 오게 된 이후에 지난 여름에 사진을 찍어 뼈가 붙은 것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측에서는 92세 연세에다가, 반년 이상을 침대에 누워 계셨으니, 걷다가 넘어지면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 하여 침대에서 머물게 하고 있다. 이해는 가지만 내 마음속이 매우 불편하다.
“이대로 누워있다 죽으면 되지, 뭘 얼마나 걷는다고”라고 장모님이 말씀을 하신다. 종아리를 만져보니 근육이 많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아직 걸을 수 있는 근육들이 잘 움직이고 어느 정도 훈련과정을 거치면 간단히 화장실 정도는 가실 수 있을 듯 하다. 오늘 약간의 운동을 시켜보니 훈련을 통해 어느정도 거동은 가능할 듯 싶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기저귀로 처리하려고 한다. 장모님은 지금도 정신이 매우 맑아서 8자녀에서 나온 손주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신다. 말씀도 잘 하시고 상황 판단도 빠르시다. 그런데 넘어질 것이 두려워, 걸을 수 있도록 돕지 않고 있다. 병원에 다 맡겨서는 안될 상황으로 판단된다
“어머니, 저희 갈께요”라고 말하는 저에게 “고맙네. 와주어서.”라고 말씀하시며 방긋 웃으시던 장모님은 딸의 손을 놓지 않고 눈 주위가 붉어지신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장모님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이 너무 뚜렷하게 보았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눈가에 맺힌 장모님의 눈물이 아직도 내 눈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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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썼던 글,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