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기회?

By | 2021년 7월 4일

앞서 “한국교회의 위기?”라는 글을 쓴 바 있다[글보기]. 아침에 “느헤미아”에 관련된 설교를 들으며 “한국교회의 기회?”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우선 “기회”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

기회(機會) :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번이 한국교회가 본질을 되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세속화되고, 샤마니즘화된 한국교회가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본다.

십자가 정신으로 돌아가자!

사실 이거 하나면 되지 않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삶을 이 땅에서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닌가?

언젠가 부터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라는 구호아래 전도를 했고, 그 ‘복’은 세속적인 복으로 받아들여졌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삶의 모습대로 살아내다 보면 세속적인 복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오히려 핍박과 고통을 이겨내야 하고, 때로는 죽음까지로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와는 거리가 먼 이미 세속회되고 기복화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사회를 향해 어떠한 영향력이 없다. 무관심을 벗어나,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인보다 더 못한 도덕심이나 공익정신 때문에 비난이나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천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교회 안에서만 선하고, 교회 안에서만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 따라서 교회 밖에서의 모습은 결코 주변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한다.

다시 십자가의 정신으로 되돌아 가야만 지금의 교회의 위기를 벗어나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몇가지를 제안한다.

  • 목사들을 신격화하지 말라. 신격화된 목사들은 종교개혁 전보다 못한 교회를 만들어내는 첫번째 이유 중 하나이다. 목회자 중심의 교회는 절대로 건강할 수 없다. 그것을 한국교회가 수십년간 입증해 주었다. 신격화는 왜곡된 기독교본질이 그대로 성도들에게 세뇌된다.
  • 세상의 경제논리로 교회을 운영하지 말라. 교회가 크면 담임목사의 차량이 커지고, 아파트가 커지고, 자녀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많아진다. 이게 교회인가? 그냥 기업이지.
  • 십일조헌금 제도를 없애야 한다. 십일조가 오늘날 한국교회를 건물중심의 교회로 만들었다. 이제 십일조에 해당 되는 재정을 이웃과 누리길 바란다. 교회에서는 이웃과 나누지 못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 교회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주일 낮예배를 비롯하며, 주일 밤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 뿐만 아니라 새벽예배까지 너무 많은 예배들이 성도들의 삶을 붙잡고 있다. 삶의 시간에서 예배시간이 많고 예배당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것이 결고 건강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가족이나 이웃과 보내는 삶의 시간들이 필요하다. 오히려 교회 안에 있는 시간이 많을 수록 스스로 사색하너가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오히려 부족해진다. 오늘날과 같은 설교중심의 예배에서는 더욱 그렇다.
  • 비지니스 목적으로 교회생활을 하지 말라.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비지니스 목적으로 교회에 등록하는 경우도 흔하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등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목적이라면 이게 세상의 계모임과 무엇이 다를까?
  • 성도들은 자신이 낸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모든 교회가 사무총회나 공동의회 등을 통해서 1년의 재정에 대하여 결산을 하고, 다음해의 예산을 세우는 일을 한다. 이때 자신의 가계부를 보듯히 열심을 내서 참여해야 한다. 간혹 “나는 하나님께 헌금했으니, 그 뒤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자신과 교회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어리석은 일이다. ‘교회’라는 정의 자체를 잘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하거나,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세뇌되었다고 보면 된다.
  • 자신이 둘러봐야 할 곳은 교회와 세상을 절반씩 나누길 바란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교회 안에만 머무른다고 좋은 신앙이 아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들을 얻는 것이다. 교회와 세상을 이분화하는 것을 그동안 목사들이 잘못 가르쳐온 탓이다. 각 개인들은 이제는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구성원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 교회 지도자들, 특히 장로를 잘 세워야 한다. 교회를 이렇게 만든데는 장로들의 몫이 크다. 그들이 장로로서 교회를 섬기지 못하고, 장로를 하나의 계급으로 인식하고 있는데서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혜롭고 헌신적이며 정직한 장로들까지 싸잡아서 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못한 사기꾼들이 너무 많이 장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생각 좀 하며 신앙생활을 했으면 한다.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다가, 다시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신앙생활과 사회생활, 가정생활 등을 이분화, 삼분화하지 말고, 하나의 인생의 큰 틀에서 보면서 살자는 뜻이다. 어떤 삶의 모습속에서 일치되는 삶 말이다.
  • 큰 교회들은 작은 교회를 돌봐야 한다. 특히, 시골에 있는 시골교회들을 돌보아야 한다.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환경문제 등에도 관심을 갖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 교회는 더 이상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성도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주일 오후에, 감정이 격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두서없이 생각들을 일단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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