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내 새끼”, “내 자식”이란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요즈음은 더 그러는 것 같다. 자식을 한 명이나 두 명 낳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말속에는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이 묻어있긴 하지만, 한편으로 “집착”도 들어있는 듯 하다. 말의 뉘앙스의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신의 자식에게 집착하는 것이야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다만 우리사회가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내 자식처럼” ‘내 새끼처럼” 대하기를 소망해 본다. 사람들은 남의 자식이라고 함부로 하고, 무관심하다. 자신의 자식들과 미래에 함께 살아갈 이웃이고 동료들인데도 말이다.
자신의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한 것이다. 식당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젊은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도 싫다. 자신의 자식만한 아이들을 이용해 먹거나, 등처먹거나, 심지어는 그들의 노리개로 삼기도 한다. 끔찍한 일이다.
남의 일이 참견하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자신의 자식 또래의 아이들을 자기 자식 대하듯 해달라는 뜻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