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세상사는 이야기

우리 부모세대들은..

우리의 부모세대들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하여 늘 가르치셨다. 물론 세상에서의 성공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계셨지만, 세상을 늘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리고 ‘공의’에 대하여 늘 가르치셨다. 단한번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공해야 한다.”라는 말이나 생각을 단한번도 하신 적이 없으셨다. 남의 것을 취하거나 빼앗는 것에 대하여서는 더욱 엄격하셨다. 가난했던 나라에서 나고 자라나고 사셨는 우리 부모들의 세대들은… Read More »

“아직도 기대를 하세요?”

오전에 어떤 교수와 대화를 하던 중에 이런 말을 내던진다. “교수님은 아직도 기대를 하세요?” 맞다. 이 시대가 이렇더라도 사람에 대한 기대감은 버릴 수 없다. 다수에게 기대를 하긴 힘들지만, 소수에게라도 기대감을 갖고 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그 소수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어제 페이스북에 글 하나를 남겨놨는데, 같은 관점의 대화를 나눈 것이다.(페이스북에 올리는 모든 글은 감춘글로 해두고 있는 시점이다.) 나는 인간이… Read More »

이미 두쪽난 나라

진실은 없다. 정의도 없다. 오직 남은 것은 “내편, 네편”이다. 나라가 두쪽으로 갈라진 것이다. 물론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은 수년 전부터이다. 고착화되어버린 분열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뻔히 보이는 사실도 진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요즈음 뉴스의 패널로 나오는 사람들도 이미 진영싸움이다. 중립은 없어 보인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피의자들의 모습은 역겹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실은 밝혀진다는 것이다.… Read More »

DNA의 무서움

현재 인간이 갖고 있는 DNA의 다양성은 인간발생의 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완벽하게 만들었지, 왜 이렇게 불안정하게 만들까?”라며 창조주 존재에 대해 부정하곤 한다. 그런데 우주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지구에서의 생명체의 발생과 진화의 과정을 좀 더 폭넓은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불완전해보이는 인류의 진화과정에 얼마나 완벽한 과정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아무튼 DNA에는 이전 세대의 속성을 그대로… Read More »

진정한 “사커대디”는…

아내는 간혹 나를 치켜세울 때에는 “사커대디”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특히 아들들 앞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나는 사커대디가 아니다. 진정한 사커대디는 따로 있다. 바로 “나의 아버지”이다. 진도라는 작은 섬에 살던 시절에, 읍에 사는 것도 아니고 면단위에서 살았던 시대에 내가 초등학생 때에는 가죽으로 된 축구공은 오직 학교에서만 만질 수 있던 시대였다. 개인이 가죽축구공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거의… Read More »

아직도 사람들을 기만하는 말

허위서류가 입시의 당락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자료가 되지 못하더라도 “허위서류를 제출하는 것 만으로도 입학이 취소“된다는 것을 이상한 논리로 본질을 호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지금까지 대학입시에서 떨어진 모든 학생들을 구제해주어야 한다. 말 길게 하지 않으련다.

‘가진 자’들의 사회적 책임

가졌다는 것은… 많은 분야에서의 가진 자를 의미한다. 지식적 측면 사회적 측면 정치적 측면 경제적 측면 신체적 측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구별된다. 최근 부쩍 고생인류, 즉 인류의 발달사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시점에서 더욱 이런 부분은 나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어제는 어떤(?) 가진 자에 대한 재판이 있었고, 1심 선고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물론, 당사자는 무죄받은 부분을… Read More »

탈마스크 첫날,

병원 안에서는 당연히 마스크 착용은 의무이다. 점심 먹으러 Subway에 갔는데, 반반이다. 식사할 때에는 당연히 벗지만, 주문 줄에서 보면 절반은 벗고 절반은 쓰고 있다. 주차장에서도 차에서 내리면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많다. 방역용 보다는 가리개용으로 보이는 상황들이 많다.

인간다움에 대하여

13개월전인 2021년 12월에 아마도 같은 생각을 하면서 쓴 글이 있다. 바로 “성악설(性惡說)과 성선설(性善說)“이라는 짧은 글이다. 인간의 본질을 평가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스러움’에 대한 기대때문에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침팬지에서 갈라진 직후의 인간은 분명히 자연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수많은 맹수들 사이에서 처절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큰 맹수들이 잡은 동물의 시체를 마지막으로 처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키도…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