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종교화가 무서운 이유

By | 2023년 6월 13일

이런 제목을 보고나서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야?”

그런데 나는 이미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글을 여러번 썼다.

이 글을 쓴 이후에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라는 제목의 글을 시리즈로 썼다. 6편까지 나누어서 써놓았다. 또 이런 글도 써놓았다. 기독교에서의 교회라는 말이 어느덧 예배당 건물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미 사전적 의미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고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 또는 그 장소.”라고 되어 있다. 공동체의 개념보다는 그 공동체가 모이는 예배장소가 교회라고 불려지고 있다.

심지어는 그 교회를 “성전”이라고 표현함으로서 구약에서의 “성전”과 동일시 하며, 기독교를 더욱 종교화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문제 중 하나가 성도들이 예배당은 교회건물 안에 갇히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교회중심의 신앙생활”

얼핏 들으면 얼마나 멋지고 거룩한 표현인가? 그런데 이 말이 성도들을 교회 안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까지 그 안에 가두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이런 글을 써둔 적이 있다.

오늘 아침에 다시금 이 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기독교의 종교화는 결국 기독교를 ‘미신의 덪’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상으로 나가 살면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보여주며 살아야할 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으로 숨어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 자신이 추구하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고해(苦海)다”

오랜시간동안 우리 조상들이 내린 인생에 대한 결론이다. 우리의 인생은 고해를 건너는 삶의 연속이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응답이 바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삶”이다.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시간들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며 사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 삶은 고해를 건너는 삶의 시간이다.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이 공존하는 삶이다. 그것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의 삶이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는 교회를 종교화하고 있다. 아니, 이미 종교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미 미신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세속적 욕망과 연결된 신앙심이 바로 그들 스스로 미신에 빠지게 하였다. 그리고 교회라는 건물안에 갇혀서 그 안에서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나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해의 인생살이에 힘이 되지 못한 채, 무능력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늘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다시 말을 꺼내 본다.

  • 교회 안에서 교인들끼리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교회 밖에 나와서도 수많은 이웃에게 친절한 인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 멀리 아프리카에 선교사를 보내는 것만이 선교가 아닌, 내 이웃을 보살피는 것도 선교입니다.
  • 불신자들에게”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천당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전도입니다.
  • 목회자를 신성시하고 절대시하는 우상화를 멈추고, 자신의 이웃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깨달으며 살아야 합니다.
  • 교회 건물을 신성시하고 쓸고 닦는 노력만큼, 자신의 주변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을 중단하고 하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다시금 해보는 그런 오전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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