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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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
- 새벽기도에 오래도록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집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새벽기도에 빠진 목사와 장로들의 빠진 횟수와 날자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십일조를 정확하게 꼬박꼬박하는 신자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십일조를 빼먹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 동료 신자들의 목록이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 40일 금식기도를 다녀온 권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시선에는 ‘너는 왜 금식기도를 하지 않느냐’는 무언의 질타가 섞여 있습니다.
- 크고 건강한 교회를 다니는 성도가 무섭습니다. 그분의 말투에는 작고 별 볼일 없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이 넘쳐납니다.
-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신학자가 무섭습니다. 그분 앞에 서면 모든 사람들이 종류별로 차곡차곡 분류되어 버리고 맙니다.
- 성도수가 제법 되는 교회 목사들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권위와 무게가 엄청난 압박으로 성도들을 찌그러트립니다.
———————————————-[페이스북 발췌]
나는 그 글에 이렇게 댓글을 썼다.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 그렇게 새벽제단을 쌓을 수 있는 믿음과 열심이 부럽고 찬사를 보냅니다.
- 십일조 뿐만 아니라 내 수입을 선한 일에 얼마나 쓰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됩니다.
- 그렇게 금식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부럽습니다.
- 크고 건강한 교회가 되기까지 그들의 헌신과 기도가 있다는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 공부를 하지 않고 대충 목회하는 것보다 확실한 신학적 바탕위에 목회를 하는 일은 중요하기에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 그냥 쉽게 큰 교회를 이루지는 않았으리라는 시각이 생깁니다.
처음 글쓴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과연 무섭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믿음과 열심이 아니라, 믿음과 열심 뒤에 숨어 있는 “의롭게 보이려는 과시욕과 남들에 대한 우월감”일 것이다. 그들은 일반사람들과는 달리 분명히 믿음도 있고, 열심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우월함과 과시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에서 이런 신자는 거의 없다. 오히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갖는 열등감이나 나태함에서 그런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따라서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의 믿음과 열심이 부럽기도 하고, 그들을 통해 내 자신의 나태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교회는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아야 한다. 다만, 타인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말이다.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었던 모습들을 이제는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그들의 믿음과 열심은 “능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다시 한번 믿음에 대하여 되새겨 본다.
잠언 22장 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