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형교회의 천박함

By | 2018년 12월 22일

반 년 전에 나는 “가면 뒤에 숨겨진 천박한 사회“라는 글을 적어 두었다[글보기]. 오늘 아침에 그 글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어제부터 오정현목사와 관련하여 사랑의 교회의 뉴스들을 검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교회와 오정현 목사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왜 나는 이 글을 다시 떠올려야만 했을까? 사실 사랑의 교회 문제는 그 교회의 문제 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대형교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한국의 중소교회들의 잠재적 문제이기도 하다.

가장 신성해야 할 교회의 모습이 이처럼 타락한 모습으로 변해버렸을까? 나는 그것을 우리사회의 천박함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천박함은 그 사회에 있는 수많은 공동체들을 그렇게 물들이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세속주의가 사회의 곳곳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종교계까지 깊숙히 뻗어 있다.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인 교회가 세속주의에 물어가는 것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교회의 천박함은 “탐욕”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탐욕이 시작되면서 인간은 이미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이용할 뿐이다.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교회는 스스로 “권력자”가 되어가고 있다. 건물이 커지고 재산이 쌓이고 사람이 많아지면서 거만해지고 교만해지면서 스스로 큰 힘을 가진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세상에서 구하는 온갖 것을 다 추구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추하고 천박한지를 깨닫지 못한다.

사실 기독교 신앙은 핍박과 고난을 받을 때 빛이 났다. 그럴 때 신앙은 순수했고, 그들의 삶은 겸손했다. 그 순수함과 겸손함이 기독교인의 힘이었고, 권위였다. 더 나아가 그 삶은 고귀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사람들이 보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기독교인인 제 자신마져도 그런 말을 듣고 있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스스로 내 자신과 교회를 돌이켜 본다면 차마 입밖으로 꺼내기 힘든 말들이 나올 것이다.

작금의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본다면, 과연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그저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종교패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듯 싶다. 성탄절이 다가오는 주말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을 둘러본다. 내 삶에 천박한 모습은 없는가?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셨다. 그 은혜로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이 이제는 그 은혜를 다시금 깨닫고 재자리로 되돌아가야 하는 시점이다.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는 성탄에, 주님의 오신 궁극적인 이유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해 재산을 축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 앞에 드린 헌금은 이제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흘려보내야 한다. 성도들은 탐욕과 권력을 버리고, 이 사회에서 더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복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천박함”을 버리고 “고귀한 삶”을 살아가길 촉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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