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 대한 나의 생각

By | 2019년 2월 1일

내 블로그에 글 중에는 아내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적어놓은 것들이 많이 있다. 아예 아내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은 글들도 있다. 아래 나열한 글들은 내 블로그에서 “아내에 대한”이란 검색어로 검색한 글들이다. 아내에 대한 다른 글들도 많이 있지만 그렇게 검색을 한 결과이다.

2013년 7월, “아내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생각”
2012년 4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여자”
2010년 1월, “아내의 별명은 나다나엘…”
2014년 5월, “인생에서 아쉬운 것들”
2013년 12월, “아내가 작은 거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2013년 9월, “아내와 가끔 싸우는 이유”
2011년 1월, “아내…그리고 엄마…

나는 아내를 아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만났다. 벌써 3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오늘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아내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수많은 글에서 정리를 해왔지만, 2019년 이 시점에서 다시금 적어두고 싶은 것이다.

아내가 앓고 있는 섬유근육통(fibromyalgia)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나, 2017년 12월 겨울에 모악산 자락으로 이사를 온 이후로 많이 적응해 가고 있는 양상이다. 통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증과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아프기 전에 했던 모든 일들은 이제 하지 못한다. 집안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삶에도 아내는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아내의 성품은 늘 그렇듯이 “간사함이 없는 삶“의 모습이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나다나엘“이다. 아내는 평상시나 위기 때에서 간사함이 없는 정직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잔꾀를 부리는 것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꼼수도 부리질 않는다. 대신에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자신이 희생을 한다. 이런 모습은 연애를 할 때, 아이를 낳고 기를 때나,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때나, 언제나 동일한 모습이다.

아내의 성품 중 하나는 “절대로 함부로 하지 않는다.”이다. 함부로 행동을 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함부로 말하지도 않는다. 절대로 후회하는 말을 내뱉는 일이 없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조절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그 마음 밭이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보다도 머리가 좋은 아내이기에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지만, 절대로 남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하지 않는다. 감정을 숨긴다기 보다는 감정을 잘 조절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곤함을 내색하지 않는다. 육체적 피곤함 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곤함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투정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은 심한 통증을 앓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아내에게는 “짜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 피곤하면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잘 조절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씀씀이가 참 아름답다. 아내는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별로 쓰지 않는다. 젊어서 가끔 “50대가 되면 옷 사주세요.”라고 해왔다. 벌써 50대가 되었다. 30대와 40대에는 자신을 위한 옷을 잘 사지 않았다. 자신을 꾸미지 않았다. 50대에는 육체가 늙으니 그 때에는 옷을 잘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옷을 잘 사입지 않는다. 대신 다른 곳에 돈을 사용한다. 그 마음이 참으로 귀하다.

아내는 매우 단순한 삶을 추구한다.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지만, 자신이 스스로 삶을 단순화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복잡한 삶이 열심히 사는 삶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아내는 단순함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단순한 삶과 단조로운 삶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또한, 아내는 절대로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때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아내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수다스러움도 없다. 그저 조용하게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불의에 대하여서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내는 겸손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평가한다. 30년 넘에 보아온 나로서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부분이다. 아내의 겸손함은 그 마음에서 나온다. 단순히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닌,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겸손이다.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감탄을 하곤한다.

아내에게는 거짓이 없다. 자신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니 굳이 감추거나 숨길 이유가 없다. 스스로 떳떳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본연의 자세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아내는 성실하다. 매사에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 몸이 아픈 지금의 삶도 성실하다. 모든 일을 계획을 세우고, 순서대로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따라서 우왕좌왕하는 일이 없다. 그 성실함은 매사에 부지런함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내는 지금도 기록을 잘 한다. 꼼꼼하게 적어 놓으니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도 잘 찾아낸다. 그리고 지금도 공부를 한다. 바쁘게 일할 때 하지 못했던 공부를 틈틈이 하고 있다. 50대 중반이 된 지금에도 열심히 책과 사전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다.

아내는 지혜로운 여자이다. 나는 내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할 때가 많다. 아내는 내게 조용하게 조언을 해준다. 요즈음 교회 내에서 내 감정을 잘 조절하고 있는 것도 아내의 덕분이다. 잠언 14장 1절의 말씀처럼 나는 아내의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생각을 정리해 보다가, 내 블로그에서 다시 검색하니 이와 거의 비슷한 글이 나온다. 비공개로 되어 있는 글 중에 2013년 7월에 어디 강연을 가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원고이다. 그 원고는 이 글보다는 훨씬 길지만 같은 맥락으로 쓰여진 글이다.  

아내에 대한 나의 생각이 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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