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에서 “의예과” 세글자를 검색해 본다. 138개의 글이 검색된다. 의예과가 주제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글들도 있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많은 글을 쓴 듯하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 “의예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의과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의예과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의학을 배우지 않는 준비단계인 의예과에 왜 그렇게 에너지를 쏟고 있는가?하는 문제는 결국 내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몇 개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 자녀가 의예과에 합격한 부모들에게(1)
- 자녀가 의예과에 합격한 부모들에게(2)
- 의예과 2학년들에게
- [책] “의사의 미래, 의예과에 달려 있다”
- 의예과 2학년들과의 면담을 시작하다
- 의예과 2학년 세포생물학과 의학용어 성적 단순비교
- 의예과를 다시 생각한다
- 당분간 의학용어 강의를 하지 않는다.
이 글들을 링크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비공개글(감춘글)이 더 많은데, 제목이라도 한번 훑어보고 있는 중이다. 감춘글에는 의예과에 대한 사랑인지 집착인지도 모를 수많은 글들이 있다. 오랜만에 이 글들을 읽어보면서 다시금 의예과에 대한 고민을 한다. 물론 또 ‘잔소리’를 써대겠지만 그래도 내 블로그에 내 생각을 적어두는데 누가 뭐라고 할까? 싫으면 읽지 않으면 그만인데 말이다.
의예과가 쉬는 시간이라고?
“의대에 들어오느라 고생했으니, 힘든 본과에 가기전에 쉬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이다.”라는 개풀뜯어먹는 이야기를 하는 글들이 많다. 실제 의예과 2학년 중에는 후배인 1학년들에게 그렇게 말을 한다. 그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인생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황금시기를 그저 쉰다는 명목하게 시간을 흘러보내는 일이야 말로 인생의 낭비이고, 더 나아가 자신을 망치는 일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저 외우는 공부를 했다면, 대학에서는 진정 자신이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학문을 탐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필요성을 깨닫고 관련된 학문을 접하는 시기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뭘 공부하면 좋아요?라는 질문 자체도 우스운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그런 학문적 욕구와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든 학문이 그저 학점이나 따는 과목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예과 시기는 자신에게 부족한 인문학 소양을 쌓기에 매우 적합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책을 읽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의예과 시기에 책을 읽어야 본과에서 그나마 몇 권의 책이라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의사가 되어서 읽는 책과 20대 초반의 의예과 시절에 있는 책은 자신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시기에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유익성을 넘어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의예과가 의과대학으로 편입되었다.
자연과학대학 의예과 보다는 의과대학 의예과가 있어 보이지? 왜 의예과는 자연과학대학을 버리고 의과대학으로 편입되었을까? 그래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 의대교수들은 “자연과학대학 내 의예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 아이들을 자연과학대학에 버려두었다.’라는 자괴감을 갖게 만들었다. 자연과학대학 입장에서는 ‘우리 자식(?)들도 아닌 이상한 놈들이 학교 분위기만 망친다.’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잘 하는 놈들이 학교에 들어와서 공부는 커녕, 놀기에 바쁘고 의대로 갈 예정이니 자연스럽게 자연과학대학의 커리큘럼에는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위에서 말한 학문적 욕구나 필요성도 없었다.
그렇다면 의예과가 의대로 편입된 후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내가 볼 때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해부학과 생리학 일부가 의예과 2학년 2학기로 넘어 왔을 뿐, 학생들의 태도변화는 없다. 의예과는 그저 쉬어가는 시간정도로 인식하는 학생들의 태도변화는 없다고 보여진다. 이런 상황을 보노라면, ‘오히려 의전원 제도가 더 낫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갖게 한다. 물론 의전원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지만, 최소한 자연과학을 좀 더 열심히 배웠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처럼 자연과학 학문을 형식적으로 학점이나 따는 과목으로 인식해버리는 한, 의예과의 미래는 어둡다. 비록 의과대학으로 편입되었지만 왜 의과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의예과가 있고, 또 의예과가 자연과학에 속해 있었던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의과대학에 편입된 후 학생들의 자연과학에 대한 태도변화는 있을까? 제대로 자연과학 학문을 학습하고 있으냐?라는 문제이다. 이런 것들이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본과에서 배우는 임상과목들은 말그대로 기초가 없는 응용학문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저 외워버리는 과목이 되고 말 것이라는 뜻이다.
힘들지만 재미있어야 하는 의학
의학을 배우는 과정은 쉬운 과정이 아니다. 학점도 높고, 학습해야 할 공부량도 많기 때문이다. 성적이 높던지 낮던지 간에 모든 학생들은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의학을 배우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는 더욱 더 힘든 과정이 되고 말 것이다. 개인에 따라 흥미로운 과목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과목도 있을 것이다. 또한 누가 가르치냐에 따라 그 흥미도가 바뀌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의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흥미나 재미라는 것은 그 과목에서 보여주는 다양성이 다이나믹한 모습이 아니다. 그 과목이 갖는 학문적 본질에 대한 탐구욕구이다. 교수가 재미있게 강의한다고 그 과목이 재미있는 학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이 의사로 살아가는데 필요하다고 느끼는 학문적 욕구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학문적 욕구가 있더라도 방대한 의학공부는 학생들을 지치게 한다. 따라서 학문적 태도가 좋은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입시제도는 이런 방향성에 반한다.)
이런 전체적인 의학공부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맡기고 학생은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대생활이다. 사실 의대공부만큼 쉬운 공부도 없을 것이다. 늘 이야기하지만 의대공부는 절대로 창조적인 학문이 아니다. 이미 밝혀진 내용을 열심히 외우는 학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직업으로서 의사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이러한 학문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더 깊게 공부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학생들이 배우는 해부학은 배운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강의시간에 배운 내용은 인체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일 뿐이다. 즉, 더 상세한 구조에 대해 알고자 할 때 바탕이 되는 기본적인 지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토대로 더 방대하고 상세한 지식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학점을 맞았다고 인체의 구조를 다 아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거기에 만족하면 안되는 것이다. 인체의 구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떄문이다.
며칠간 의예과 1학년 1학기 과목인 “의학개론”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다가 이런 글 하나를 남기는 것이다. 두서없지만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을 적어두는 것이다. 도대체 의대에 들어온 학생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의사를 어떻게 생각하며, 의학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의예과의 과정과 본과(의학과)의 과정에 대하여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일까? 우리사회가 의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있는가? 우리사회의 제도가 의사와 의료에 대한 어떤 정책들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찾아보고나 있는지? 정말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