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세상사는 이야기 2021

소비자 중심?

어제 집에서 시내로 가는 도중에 어떤 가게 앞마당에 ‘한라봉’을 펼쳐놓고 파는 분을 보았다. 보통은 바구니에 몇개씩 담아서 일정액을 받는 것이 보통인데, 이 분은 아예 한라봉을 펼쳐 놓았다. 그래서 “왜 그럴까?”라는 말을 던졌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그러는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이런 예상들을 해보았다. 아내와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첫째로, 운전자들이 지나칠까 봐서 가게 앞마당에 넓게 펼쳐놓고 판다. 그래야만 눈에… Read More »

우리가 ‘무당’을 무시하는 이유

샤마니즘이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당시에 무당은 많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물론 당시에도 그것이 웃긴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무당의 존재가 신의 존재만큼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즉, 무당의 말 한마디가 그 만큼 영향력이 컸다.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당의 말에 귀를 귀울일까? 아직도 사주나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긴하다. 그들은 그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Read More »

2020년 facebook을 책으로 묶다

2020년에 페이스북에 쓴 글을 모아주는 “bollog(볼로그)“라는 업체를 통해서 책으로 묶었다. 매년 초가 되면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다. 전에는 댓글도 모두 책에 실었는데, 댓글 쓴 모든 페친의 동의를 물어야 하는 일이기에 최근에는 자신이 올린 글과 댓글 수, 반응자 수 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쓴 글이나 링크된 글에 대하여 책으로 남겨 놓는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매년 그렇게… Read More »

교회가 소상공인이냐?

토요일 아침이다. 내일이 주일이니 또다시 “대면예배 강행”이라는 뉴스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 뻔하다. 대면예배를 강행하려는 교회들은 ‘정부 방역 정책의 형평성’을 말하면서 법집행의 불공정성을 말한다.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교회가 소상공인이라면 그것이 그렇게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가 소상공인이냐?” 뭐가 그리 형평성을 따질 것이 있다고들 그 난리들인지 모르겠다. 작금의 모습은 교회의… Read More »

할아버지가 쓰시던 시조집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진도읍 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 집에 있던 물건들을 많이 정리했다. 그때 몇가지 물건들을 내가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가 “시조집(時調集)”이다. 이 시조집은 단순히 시조의 노랫말만 적힌 것이 아니고, 실제 시조를 읊을 수 있도록 리듬과 음의 고저가 표시되어 있다. 그 동안 연구실 책꽂이에 꼽혀 있었는데, 이것을 집으로 가져와서 사진도 찍고, 한번 시조를 직접 읊어보았다. 그림에 표시된대로 해보니… Read More »

비대면 예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사회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종교인들은 종교시설에 출입할 수 있다. 교회의 경우는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것을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예배가 금지되고 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일환이다. 오늘 신문기사의 댓글을 보는데 이런 글이 있다. “예배당에서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 보다 지하철이 더 위험하다.” 글쓴이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 Read More »

빛과 어두움, 그리고 선과 악

빛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춘다. 어두움도 누구나 어두움 속에 있게 된다. 어느 누가 보아도 빛이요, 어두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빛인데, 그것이 어두움이 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같은 어두움을 우리는 어두움이라고 한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이이게 선할 때 우리는 그것을 “선(善)”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악한 것을 우리는 “악(惡)”이라고 정의한다. 누군가에게는 선인데, 누군가에게 악이라면 그것은 선이 아니다. 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사회에서 보여주는 선과 악의…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