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어릴 적에 ∙ 추억 시리즈 99

[어릴 적에. 10] 가죽 축구공

어렸을 때 나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실제 우리학교 대표선수이기도 했다. 맨날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축구를 하곤 했다. 그러니 얼굴이고 팔이 시커멓게 그을려 다녔다. 대학교에 다닐때까지 난 내 피부가 까만줄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축구공이 모두 고무였다. 바람을 좀 많이 넣으면 바운딩이 심하게 되고, 바람이 조금이라도 적으면 아무리 차도 멀리가지 않았다. 가죽 축구동은 학교에만 있었다. 개인이 가죽 축구공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Read More »

[어릴 적에. 9] 어느 잡종견의 추억

진도에는 진돗개(진도개가 아니라 진돗개가 맞고, 진도깨라고 발음함)가 있다. 그러나 당시에 진도에는 진돗개 말고도 많은 종류의 개들이 혼재해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말 이후에 노란 것(황구, 黄狗)과 흰 것(백구, 白狗)만 순종으로 인정하여 나머지 진돗개(예를들어, 흑구와 같은)들과 타 종류의 개들의 사육이 금지되었다. 진돗개는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해 보호받고 있고, 1967년에 “한국진돗개보존육성법”이 제정되어 혈통이 보존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때만 해도 진도에는… Read More »

[어릴 적에. 8] 처음보는 미국인

초등학교 3학년 추석 전날 오후 늦게 우리집에 한 미국인이 방문하였다. 당시 외항선을 타던 6촌 형이 추석을 맞아 고향에 오면서 함께 온 것이다. 미국인이 우리집에 왔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었나 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몰려들었다. 담장이 있었던 집이라 집안으로 들어오진 않았고, 모두 담장 밖에서 고개를 기웃거리며 집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너도 나도 앞다투어 집안을 들여다 보느라 몇시간동안 시끌벅적했다. 추석이라 날씨가… Read More »

[어릴 적에. 7] 감나무에 묶이다

우리집은 앞쪽으로 신작가 있었고, 옆쪽으로는 둔전리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물론 반대편 길가의 집들은 모두 둔전리에 속한다. 길 하나로 장언리와 둔전리가 구별되었다). 우리집 약방은 신작로 쪽으로 문이 나 있지만, 약방의 뒷쪽에 있는 안방의 창문은 바로 그 옆길쪽으로 나있다. 옛날 집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길가에 있는 집들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못했다. 특히 우리집은 바로 길가에 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어느날 오후에 집으로 가던… Read More »

[어릴 적에. 6] 어느 귀한 아들의 죽음

내가 어릴 때는 각 집마다 자녀들을 적어도 다섯명 이상은 낳았다. 60년대만 해도 영아사망률이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대부분 가난하였지만 다들 잘 자랐다. 내 형제도 원래는 8명이어야 하지만, 6번째로 태어난 여자 쌍둥이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나의 가장 먼 기억이 바로 그 쌍둥이들이 태어난 날이었다. 태어난 날은 분명하게 기억을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각 집마다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에 유독… Read More »

[어릴 적에. 5] 교회종탑

우리 마을에는 둔전교회가 있다. 둔전교회는 우리집 바로 앞에 있다. 당시에는 교인이던지 아니던지 간에 교회에 행사가 있거나 하면 모든 마을사람들이 동참하곤 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과 같은 절기도 마찬가지였고, 교회에서 어떤 일이 필요하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도와주곤 했다. 교회의 오래된 종탑 대신 새로운 종탑을 세우는 일이 있었다. 기존의 종탑은 녹이 슬어서 매우 위험했기 때문에 새롭게 종탑을 세우게 된 것이다. 기존의 종탑에… Read More »

[어릴 적에. 4] 상여집

시골에 가면 상여집이 있다. 내가 살았던 곳도 마을의 서쪽에 “횟게등”이라고 불리웠던 조그마한 소나무 숲 동산이 있고, 그 옆에 상여집이 있었다. 겁이 많았던 나는 상여집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하는 것을 기피했다. 상여집을 보는 것 만으로도 매우 무서웠기 때문이다. 간혹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여가 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난 집에 숨어있곤 했다. 마을의 소나무 숲 동산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 Read More »

[어릴 적에. 3] 내 인생의 첫 흡연

우체국장님네는 아들 셋과 딸이 둘이 있었다. 큰 딸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서 별로 본 적이 없고, 큰 아들도 일찍 광주에서 학교를 다녀서 방학 때 가끔 볼 수 있었다. 둘째아들은 나보다 한살이 더 많았다(학년은 두 학년이 높았다). 둘째딸은 내 아래 학년으로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을 갔고, 막내아들은 내가 장언리에서 살 때까지 그 곳에서 살았지만, 나중에 자녀들이 모두 광주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Read More »

[어릴 적에. 2] 똥바아저씨

내가 살았던 마을은 장언리이지만, 둔전리와 붙어 있어서 사실상 한 마을이나 다름이 없었다. 행정구역상 나뉘어져 있을 뿐 좁은 길 하나를 두고 마을이 갈라져 있었는데, 장언리의 집들 중 절반은 둔전리 안으로 파고 들어 있는 형태였기 때문에 두 마을은 그냥 하나의 마을로 인식하고 있었다. 둔전리에서도 산쪽으로, 그러니까 마을의 윗쪽에 가면 흙으로 지어진 작은 초가집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똥바아저씨와 그의 가족들이 살고… Read More »

[어릴 적에. 1] 병식이의 도둑질

병식(가명)이는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동네 형이다(편이상 형이라 호칭하지 않는다). 우리집에서 한집을 건너뛰면 병식이네 집이다. 병식이는 대가족이 산다. 아들이 많았던 병식이네는 병식이가 막내 아들이다. 동년배에 비하여 키와 덩치가 컸던 병식이는 동네에서 대장노릇을 많이 했다. 어느날 병식이는 동네아이들을 5-6명 불러냈다. 그리고 우리집 앞에 있었던 가게에서 라면을 시켜서 먹었다. 매일 오후가 되면 몇몇 아이들을 불러내서 라면을 사곤했다. 며칠이 지나자 동네에…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