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교육 ⑨ 멀리 보고 뛰게 하다.

By | 2012년 11월 7일

캐나다에 잠깐 살면서 궁금한 것 중에 “이 사람들은 왜 초.중.고 모두 세시반이면 하교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었다. 아이들을 봐도 학교에서 딱히 가르치는 것은 없어 보였다.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런데 정작 저 애들은 대학에 가면 잘 적응하고 다닌다. 제가 있던 대학교 입학정원의 60% 가량만 제대로 졸업하고 나머지는 낙제하거나 졸업을 하지 못했다. 대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생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민2세나 1.5세, 또는 유학생들 중에 유명대학에 입학한 뉴스는 많이 있지만 실제로 뛰어나게 졸업했다는 뉴스는 거의 없다. 엄청난 분량을 공부를 하는 그네들의 교욱 시스템에서 왜 그들이 잘 살아남는가?하는 것이다. 그게 너무 궁금했다.

2년동안 잠깐 살다왔기에 모든 것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초등학교는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자료를 수집하는 능력과 특성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훈련을 하는 기간이다. 중학교는 수집된 자료를 공유하고 Group Study가 가능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운다. 고등학교는 이런 것들을 분석하는 훈련을 하는 기간이다.”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이런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강의식 수업에서 얻는 것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스스로 찾고 해결하는 능력으로 대학생활을 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런 환경에서 그들은 대학의 고유기능인 “교육(학문)”과 “연구”를 잘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보자. 그들에게 과연 학문이란 이름을 붙일만한 것이 얼마나 있는가? 아직도 교수가 쪽집게 과외선생이 물어다 갖다주는 지식을 받아먹고만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대학에서의 전공에 대한 학문은 사라지고 오직 취직을 위한 학원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런 대학을 가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때부터 훈련되어지고 수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그 순수기능을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교육을 백년대계로 생각한다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 초.중.고를 거치며 애들은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러니 대학에 들어가면 긴 시간의 노력의 목표점에 도달한 것이 되고 그 때부턴 지쳐서 무기력해진다. 저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무기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영어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오직 취직을 위해서이다.

초등학교가 전인교육체제가 아닌 성취위주의 학습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미래는 없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낸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서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종종있다. 유치원때부터 영재교육을 시킨다고 학원교육을 시작한 아이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된 점은 빨리 지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한국의 대학생들이 지쳐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는 뛰어 놀기를 바랬다. 캐나다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때 여자아이들이 더 뛰어나 보이지만 수능을 보고나면 그것이 역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2, 고3이 되면서 남자아이들이 체력이 좋아서 그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더 잘 놀던 남자아이들이 학습성과를 더 잘 내는 것으로 평가된다.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겠지만 더 많이 놀던 아이들이 (물론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여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나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더 멀리 보고 뛰게 했으면 좋겠다. 유치원때 부터, 초등학교때 부터… 아이들의 힘을 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목표점이 멀리 있는 마라톤 선수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단거리 선수와는 분명히 다르게 뛰어야 한다. 아이들의 교육은 마라톤과 같기 때문이다. 분명히 전략이 필요하지만 초반에 힘을 빼는 전략은 절대로 없다. 힘을 비축해 둔다. 그런 전략이 학습에서도 필요하다.

올백을 맞지 않아도, 전교 1등을 하지 않아도 결승점까지 어떻게 뛰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자녀들을 교육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렸을 때 부터 학원의 힘으로 학습의 단기적 성취를 맛본 부모와 자녀들이 그 덫에서 벗어나야 멀리 뛸 수 있다.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고 당장 과외선생을 자르는 우를 범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이 보는가?

저와 아내는 이 부분에 일치된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다그침이 없었다.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때에도 조급함을 갖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순간순간 속상하고 불안할 때도 있었다.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런 위기와 유혹에서 벗어 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이 마라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옆 선수가 치고 앞으로 나가더라도 자신의 전략대로 뛴다면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에 갈 때는 승리를 직감할 수 있는 지점이 나타난다고 본다. TV 에서 마라톤을 볼 때 마다 거기에서 인생도 배우고 교육철학도 배우게 된다. 그래서 마라톤을 올림픽의 꽃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자녀교육이야기

글을 시작하며

머릿말과 목차

제1장 자녀교육의 초보운전자
홈스쿨링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
교육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일정한 역치를 갖다.
아이들의 능력을 관찰하다.
우리 아이들은 영재가 아니다.
올100을 맞은 적이 없다.

제2장 조금씩 보이지만
참고 기다리다.
멀리 보고 뛰게 하다.
사춘기가 없었던 아이들.
과외는 필요악이다.
과감한 투자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모니터링과 샘플링
책을 읽는 것은 숙제가 아니다.
쉼이 필요해. 기계가 아니야.

제3장 자녀를 위해 기도하라
아이들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
신뢰보다 더 좋은 응원은 없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엄마의 수고가 가장 값지다
왜 아쉬움이 없을까
부모로서 보여주어야 행동들
기도가 필요한 이유

글을 마무리하며

“자녀교육이야기”를 모두 쓰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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