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교육 ⑧ 참고 기다리다.

By | 2012년 11월 7일

2003년 8월말에 귀국한 우리 가족이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학교에 다시 보내는 일이었다. 홈스쿨링 같은 제도권 밖의 교육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다니던 학교에 다시 가게되었다. 큰아들이 교실에 들어서자 몇몇 아이들이 이름을 부르며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둘째아이가 교실에 들어갈 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큰아들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9월엔가 시험이 있었다. 국어와 사회를 최하점을 받아왔다. 절반도 못맞았으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2년간 열심히 놀고 온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놀거나 바이올린과 플룻, 그리고 수영을 배워왔다. 성적표를 가져온 큰아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괜찮아. 2년간 놀다왔는데 그정도도 대단하다. 앞으로 점점 좋아질거야.”라며 격려했다. 놀라운 것은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있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었다. 물론 우리부부는 아이들이 겨울이 올 때면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 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거짓말처럼 12월의 시험에서는 다시 상위권으로 올라가 있었다. 불과 3개월 정도 참고 기다린 결과였다. 실은 우리부부도 조급함이 생긴 적은 있다. 캐나다에서 1년을 다 살아가는데 아이들의 영어가 늘지 않았을 때이다. 이전에 운영하던 핼리펙스메일 닷 컴(지금은 닫아 놓았다)에 쓴 적이 있다. “니들 그정도 영어해서는 어디가서 캐나다 갔다왔다고 말하면 안돼. 그냥 나이지리아 갔다가 왔다고 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대답이 걸작이었다. “나이지리아 국어가 영어인데요!”

부모는 조급해질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뭔가를 해내야하는 우리사회의 병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그런 사회속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면서 생기는 조급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게 별로 도움이 안되더라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영어 사건 이후에 아이들의 영어는 급성장했다. 2년 가까이 살고 온 덕에 아들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캐나다에 가기전에 아이들을 영어를 거의 준비시키지 못하고 갔었다. 그런 잘못은 부모가 했는데 부모가 조급해지고 역정을 낸 셈이다. 물론 캐나다에 가서 영어공부를 그냥 놔두진 않았다. 늘 단어를 외우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고, 2년차에 들어가서 영어선생님과 에세이를 공부했다. 보통은 1년차에 선생님을 붙이는데 특이하게도 2년차에 영어가 어느정도 되는 시점에서 선생님을 붙이니 영어실력이 급성장했던 것은 아닌가?싶다. 물론 당시는 초등학생의 영어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영어공부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쓸려고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면 12년 후에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대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학습분야 뿐만 아니라 인성의 측면에서도 부모가 참고 기다려야 할 것도 있다. 완전한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 전까지는 부모는 참고 기다려야 한다. 단순히 견디는 기다림이 아니라 소망하며 기다리는 시간들어야 한다. 거기엔 부모의 욕심이 개입해서도 안된다. 부모는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아내가 아이들이 성장할 때 그런 말을 간혹 한 적이 있다. “하루에 열두번 내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참는다. 만일에 내가 계모라면 어땠을까?”라고 내게 물어보곤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배아파서 난 자식도 하루에 몇번씩 참아야 하는데 만일에 남이 낳은 자식이라면 어떨까?”하고 물은 적도 있다. 아이들이 무슨 사고를 치거나 야단을 많이 맞아야 하는 그런 상황이 많았다는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수학공부를 시키다가도 화가 치밀때가 있다. 태도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이해력이 떨어져도 그런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밥먹으라고 불러도 딴짓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아내는 늘 그렇게 참아왔다. 아빠인 저는 그렇게 집에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부딪힐 일들이 없었지만 아내를 달랐을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일은 부모의 인내는 아이들에게 부모로서의 권위를 갖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참는 부모를 바보로 생각하는 자녀들은 없다. 그런 시간들이 흘러 아이들은 이제 집을 떠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녀교육이야기

글을 시작하며

머릿말과 목차

제1장 자녀교육의 초보운전자
홈스쿨링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
교육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일정한 역치를 갖다.
아이들의 능력을 관찰하다.
우리 아이들은 영재가 아니다.
올100을 맞은 적이 없다.

제2장 조금씩 보이지만
참고 기다리다.
멀리 보고 뛰게 하다.
사춘기가 없었던 아이들.
과외는 필요악이다.
과감한 투자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모니터링과 샘플링
책을 읽는 것은 숙제가 아니다.
쉼이 필요해. 기계가 아니야.

제3장 자녀를 위해 기도하라
아이들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
신뢰보다 더 좋은 응원은 없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엄마의 수고가 가장 값지다
왜 아쉬움이 없을까
부모로서 보여주어야 행동들
기도가 필요한 이유

글을 마무리하며

“자녀교육이야기”를 모두 쓰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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