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66] 간첩이었을까?

2학년때 여름방학때였던 것 같다. 한가한 어느 오후였다. 우리집 앞집은 상점이어서 걸터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앉아 있었는데, 놀고 있는 나를 부른다. 어른이 부르면 당연히 가야 하는 법이 통하던 시절이라 다가갔다. 몇학년이냐? 이름이 뭐냐?고 묻더니 재미있는 사진을 보여준다고 한다. 간이용 프로젝터였다. 35mm 네거티브 필름에 프레임으로 쌓인 말그대로 강의 때 사용하는 프로젝트용 필름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Read More »

[어릴 적에. 65] 비끼바

비끼바는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를 찾아오던 거지의 이름이다. 본명은 모르고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부르니 이름처럼 되어 버렸다. 그는 4, 50대 가량의 남자이다. 그는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있으면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으며 “비껴! 비껴”라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즉 “비껴, 비껴”라고 말하는 남자거지에 어미사 “~바”를 붙인 것이다(어미사 “~바”에 대하여서는 “똥바아저씨” 이야기에서 쓴 바 있다). 그는 지팡이를 들고… Read More »

[어릴 적에. 64] 죽심이

죽심이는 4, 50대 보이는(어린 내 눈에 그렇게 보였으니 실제론 더 젊을 수 있다)는 여자거지이다(남자거지인 “비끼바 이야기“는 따로 적는다).  집은 신동리에 인접한 “금성리”라고 알려져 있으나 나는 잘 모른다. 그녀가 금성초등학교 교문 앞 남자결핵환자의 집에서 살면서, 그 남자가 죽어갈 때에 함께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 이후로 진도를 떠나 왔으니 소식을 알 길이 없다. 등 뒤에 배낭을 메고 논두렁을 걸어다니며 뭐라고… Read More »

[어릴 적에. 63] 매미를 삼킨 닭

여름방학에는 할아버지댁에만 가는 게 아니었다. 때로는 외할머니댁에도 갔다. 외할머니댁은 의신면 칠전리에 있었다. 할아버지댁은 그 마을의 중심에 있었고, 큰 기와집이었다. 할아버지의 가족 구성도를 그리자면 매우 복잡하다. 그려 놓으면 “사실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어려서는 그 관계를 잘 몰랐지만, 당시에 내가 외할머니라고 불렀던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를 낳은 할머니는 아니었다. 외삼촌 세 분, 이모들 9명(엄마포함하면 딸이 10명)이었다(이 이야기는 내 블로그에 숨은 글로… Read More »

[어릴 적에. 62] 산림보호

우리가 어렸을 때는 625동란 때의 사진에서 보는 민둥산은 없었다. 그동안 산림보호정책으로 인해 숲에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매년 4월 5일 식목일이 되면 학교에서 묘목을 받아서 정해진 산에 가서 심었다. 나무는 주로 마을별로 구역이 할당되었다. 고학년부터 저학년까지 구성되어 주어진 나무를 다 심어야 식목일의 일정이 끝이 났다. 초등학생들이 삽을 들고 나무를 들고, 양동이에 물을 들고 산을 올라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Read More »

[어릴 적에. 61] 동강원과 윤영윤 선생님

동강원은 천주교 수녀원 같은 곳이다. 연산리에서 용인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천주교는 아니고 기독교인들이 집단 생활을 하는 곳이다. 동강원 원장님은 몸이 비대한 편이다. 어릴 본 모습이라 정확하게 몇살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님들과 엇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은 연세가 아니었을까? 복장이 수녀복과 비슷하였지만 수녀는 아니었다. 가끔 집에 오셨는데, 강정 같은 것을 늘 가지고 오셨다. 어머니께서도 동강원을 늘 신경쓰셨는데,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내가… Read More »

[어릴 적에. 60] 가끔씩 사라지는 엄마와 아빠

내가 어렸을 때 4형제가 있었다. 큰 누나, 작은 누나, 나, 그리고 동생 이렇세 넷이다. 막내 동생은 태어나지 않았을 서절의 이야기이다. 형은 읍내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어렸을 때 함께 살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는 일을 도와주는 누나가 있었다. 가끔은 이모도 와 있었고, 막내 고모도 오곤 했다. 때론 작은 아버지가 오시기도 했다. 이렇게 친척들이 와 있는 며칠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Read More »

[어릴 적에. 59] 술먹으면 개

우리동네에 술만 먹으면 개(?)가 되는 아저씨가 있었다. 전형적인 알콜중독자의 모습이다. 자식은 몇명이 있었고, 아저씨는 덩치가 컸고 아줌마는 약간 통통하였지만 키는 작은 여자였다. 당시에 술꾼들의 특징은 모두 도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술과 담배, 도박은 늘 함께 묶여 다닌 셈이다. 그 아저씨는 평소에는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 가난했지만 다른 집 일들도 잘 도와주고 아이들에게도 잘 해주었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신작로에 들어… Read More »

[어릴 적에. 58] 손오공

초등학교 4학년 교실, 나와 친구들은 MBC 라디오 드라마 “손오공”을 흉내내고 있었다. 인기절정의 라디오 드라마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듣고 있는 드라마였다. TV가 별로 없던 시절, 라디오의 드라마는 우리에게 꿈과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였다. “우랑바리 다라나 바로둥 무따라까 따라마까 쁘랴냐~ 오색구름 내려와라 야~~얍!”이라고 하면 “슈우~융”하고 구름이 내려왔다. 소리만 드렸지만, 우리는 오색의 찬란한 구름이 손오공의 발아래로 내려와 손오공을 태우고 하늘을… Read More »

[어릴 적에. 57] 서예를 배우다

초등학교 4학년 미술시간, 나는 우리 학년에서 가장 키가 컸기 때문에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교실 뒷쪽문 바로 입구에 말이다. 그날은 붓글씨를 쓰는 날이었다. 열심히 글씨를 쓰고 있는데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윤영동 선생님께서 복도를 지나가시다가 잠시 들리셨다. 내가 글씨를 쓰는 것을 보시더니 최인규 담임선생님께 가시더니 “내가 형태를 가르쳐야겠다. 그렇게 해달라”고 하셨고, 나는 그 다음주 부터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에…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