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36] 세종이 아저씨

내가 사는 시골에 간혹 나타나는 아저씨가 있었다. 가수 조용남씨가 쓰는 것과 같은 뿔테안경에(실은 얼굴도 비슷한 느낌이다), 베레모와 비슷한 헌팅캡, 그리고 조끼를 입은 호탕한 아저씨였다. 간혹 시골에 오시면 어린 우리들에게 과자를 사주곤 했다. 우리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호칭했지만 대화를 할 때면 거의 친구에게 대하는 듯 하였다. 어머니에게는 “형수님, 형수님”하며 잘 대해주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간혹 술이 취하면 자신이… Read More »

[어릴 적에. 35] 춤바람

언젠가 우리 동네에 화장을 짙게 한 젊은 여자가 등장했다. 양장 차림에 화장까지 짙게 한 모습은 시골에서 사는 사람의 모양은 아니었다. 우리동네 어느 집에서 장기간 머물면서 사람들을 모집하여 춤을 가르쳐주는 춤선생이었다. 우리집의 안방에서도 교습이 있었다. 마을사람들 7, 8명이 안방으로 들어오고, 모두 방의 가쪽으로 앉아서 춤을 가르치는 것을 지켜본다. 나도 그 사이에 끼어서 열심히 보곤 했다. 지루박, 탱고, 차차차, 등… Read More »

[어릴 적에. 34] 둔전교회

둔전교회(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744 소재)는 우리집 앞길 바로 건너 위치한다. 걸어서 10초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려서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다니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탄절이나 부활절, 그리고 여름성경학교가 있을 때면 친구들과 함께 둔전교회에 다녔다. 이미 “교회종탑” 이야기에서 둔전교회를 언급한 바 있다. 둔전교회는 우리 마을에서는 비교적 큰 건물이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보잘 것 없는… Read More »

[어릴 적에. 33] 사진사 아저씨

우리가족들은 어려서 부터 사진이 있다. 읍내에 나가야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던 시절, 시골동네에서 어떻게 사진을 그렇게 자주 찍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모두 조규천 아저씨 덕분이다. 조규천 아저씨는 아버지와 동갑내기 친구이시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 서무과에서 일을 하셨고, 학교 바로 앞에서 문방구와 교사들을 위한 하숙집도 운영하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그 분은 도깨불치라는 동네에서 사셨다. 나중에 도깨불치… Read More »

[어릴 적에. 32] 염소를 살려라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우리나라가 가난했다. 당시 우리나라 GNP가 1970년 기준으로 243불(당시 북한은 286불)이었다. 참고로 작년(2013년) 기준 GNP는  24,328불이었다. 아무튼 지금 세대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이렇게 비교하면 된다. 2013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말라위가 222불(183위), 그 다음이 부룬디로 303불이다.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니 각 개인의 가난은 어땠는지 알 수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토끼를 키우도록 장려했다. 당시에… Read More »

[어릴 적에. 31] 뒤집어진 니어카

우리 동네는 정규버스는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오는 곳이었다. 그 버스들은 모두 녹진항(지금 진도대교가 있는 울둘목의 서쪽 마을)에 배에서 내리는 손님을 맞으러 가는 버스들이다. 즉, 하루에 배가 세번 온다는 뜻이다. 목포와 제주, 혹은 거문도를 오가는 배들의 시간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신작로는 하루 종일 차가 다니질 않는다. 간혹 관용짚차가 가거나 전화로 불른 택시가 있을 뿐 신작로는 비어 있다. 따라서… Read More »

[어릴 적에. 30] 태권도와 사범아저씨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의신면 칠전리에 있던 외할머니댁에 갔다가 태권도를 처음 배우게 되었다. 지금은 서울에 사는 인자이모가 직접 만들어준 도복을 입고서 말이다. 오랫동안 외할머니댁에 머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주일 가량 배우다가 집으로 되돌아 왔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한 후에 방학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발표하던 중, 선생님(박하준 선생님 이야기에서 나오는)께서 시범을 보여달라고 해서 앞지르기와 앞차기를 교실 앞으로 나와서 했던 적이… Read More »

[어릴 적에. 29] 태호아저씨

우리집에서 왼쪽으로 돌아 골목으로 올라가면 세번째 집에 태호아저씨네 집이다. 아버지와 동갑내기여서 그런지 두 분이 참 친하셨다. 국장님네집과 우리집에만 전화가 있던 시절, 태호아저씨를 참으로 많이 부르러 갔다. 전화가 아주 자주왔다. 오늘날 처럼 전화를 사용하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다가 바꾸어주었지만 자주 전화 때문에 태호아저씨네 집을 가곤 했다. 마당에 들어서면 그 집에 보인다. 대문에서 보면 1시방향엔 방이, 2시 방향엔 마루와 안방문이… Read More »

[어릴 적에. 28] 무당의 굿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절에 다니셨다. 그리 정성스럽게 다니는 것은 아니었고 사월초파일이 되면 절에 다녀올 수준의 불자였다. 불경을 외우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절에 불을 켜고 비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또한 절에 갈 무렵에는 육식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언젠가 어머니가 머리가 너무 오랫동안 많이 아프다며 굿을 하기로 하셨다. 무당은 굿을 하기로 한 며칠 전에 집을 둘러보고… Read More »

[어릴 적에. 27] 옐로우와 헬로우

진도에는 진돗개가 있다. 당시에는 잡종견도 있었다(이 이야기는 “어느 잡종견의 추억“에 적은 바 있다). 모든 집이 진돗개를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지역보다고 개를 많이 키운다고 볼 수 있었다. 많은 개들이 있지만 그들의 대부분의 이름은 “백구”나 “황구”였다. 대부분의 집에서 “백구야~!” “황구야~!”하고 부르면 자신의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 달려가곤 했다. 우리집의 개들은 예외였다. 언젠가 황구(털이 갈색인)를 하나 샀는데 이름을 “옐로우(Yellow)”라고 붙였다.…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