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7] 감나무에 묶이다

우리집은 앞쪽으로 신작가 있었고, 옆쪽으로는 둔전리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물론 반대편 길가의 집들은 모두 둔전리에 속한다. 길 하나로 장언리와 둔전리가 구별되었다). 우리집 약방은 신작로 쪽으로 문이 나 있지만, 약방의 뒷쪽에 있는 안방의 창문은 바로 그 옆길쪽으로 나있다. 옛날 집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길가에 있는 집들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못했다. 특히 우리집은 바로 길가에 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어느날 오후에 집으로 가던… Read More »

[어릴 적에. 6] 어느 귀한 아들의 죽음

내가 어릴 때는 각 집마다 자녀들을 적어도 다섯명 이상은 낳았다. 60년대만 해도 영아사망률이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대부분 가난하였지만 다들 잘 자랐다. 내 형제도 원래는 8명이어야 하지만, 6번째로 태어난 여자 쌍둥이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나의 가장 먼 기억이 바로 그 쌍둥이들이 태어난 날이었다. 태어난 날은 분명하게 기억을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각 집마다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에 유독… Read More »

[어릴 적에. 5] 교회종탑

우리 마을에는 둔전교회가 있다. 둔전교회는 우리집 바로 앞에 있다. 당시에는 교인이던지 아니던지 간에 교회에 행사가 있거나 하면 모든 마을사람들이 동참하곤 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과 같은 절기도 마찬가지였고, 교회에서 어떤 일이 필요하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도와주곤 했다. 교회의 오래된 종탑 대신 새로운 종탑을 세우는 일이 있었다. 기존의 종탑은 녹이 슬어서 매우 위험했기 때문에 새롭게 종탑을 세우게 된 것이다. 기존의 종탑에… Read More »

[어릴 적에. 4] 상여집

시골에 가면 상여집이 있다. 내가 살았던 곳도 마을의 서쪽에 “횟게등”이라고 불리웠던 조그마한 소나무 숲 동산이 있고, 그 옆에 상여집이 있었다. 겁이 많았던 나는 상여집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하는 것을 기피했다. 상여집을 보는 것 만으로도 매우 무서웠기 때문이다. 간혹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여가 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난 집에 숨어있곤 했다. 마을의 소나무 숲 동산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 Read More »

[어릴 적에. 3] 내 인생의 첫 흡연

우체국장님네는 아들 셋과 딸이 둘이 있었다. 큰 딸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서 별로 본 적이 없고, 큰 아들도 일찍 광주에서 학교를 다녀서 방학 때 가끔 볼 수 있었다. 둘째아들은 나보다 한살이 더 많았다(학년은 두 학년이 높았다). 둘째딸은 내 아래 학년으로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을 갔고, 막내아들은 내가 장언리에서 살 때까지 그 곳에서 살았지만, 나중에 자녀들이 모두 광주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Read More »

[어릴 적에. 2] 똥바아저씨

내가 살았던 마을은 장언리이지만, 둔전리와 붙어 있어서 사실상 한 마을이나 다름이 없었다. 행정구역상 나뉘어져 있을 뿐 좁은 길 하나를 두고 마을이 갈라져 있었는데, 장언리의 집들 중 절반은 둔전리 안으로 파고 들어 있는 형태였기 때문에 두 마을은 그냥 하나의 마을로 인식하고 있었다. 둔전리에서도 산쪽으로, 그러니까 마을의 윗쪽에 가면 흙으로 지어진 작은 초가집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똥바아저씨와 그의 가족들이 살고… Read More »

전주한옥마을

전주에 살게 된지 어느덧 19년째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들이다. 그런데 한번도 제대로 한옥마을을 돌아다보질 못했었다. 지난 봄에 아내와 처음으로 한옥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경기전과 전동성당은 외부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잠시 들은 적은 있었지만, 한옥마을을 구석구석 보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추석날인 어제 저녁에 작은 아들과 함께 돌아다녔다. 수많은 인파들은 chaos를 만들어냈고, 이미 상업적으로 변해버린 한옥마을의 길거리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Read More »

추석명절의 뒷끝

오늘 네이버 첫화면 광고에 “도미노피자”가 사고를 쳤다. 광고카피가 이렇다. “시월드 탈출기념, 하루라도 편하게“라고 말이다. 광고는 오래가지 않고 바로 내려서 많은 분들이 보질 못했겠지만, 벌써 캡쳐된 화면이 각종 카페에 올라오고 있다. 또 며느리 블로거들도 앞다투어 시월드탈출기(?)를 올려놓는다. 아이들의 사진을 첫화면에 걸어둔 블로거들의 시월드탈출기는 “자식”과 “부모”가 서로 대비되어 왠지 씁쓸함을 가져온다. 한국의 며느리들이 고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여자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Read More »

[어릴 적에. 1] 병식이의 도둑질

병식(가명)이는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동네 형이다(편이상 형이라 호칭하지 않는다). 우리집에서 한집을 건너뛰면 병식이네 집이다. 병식이는 대가족이 산다. 아들이 많았던 병식이네는 병식이가 막내 아들이다. 동년배에 비하여 키와 덩치가 컸던 병식이는 동네에서 대장노릇을 많이 했다. 어느날 병식이는 동네아이들을 5-6명 불러냈다. 그리고 우리집 앞에 있었던 가게에서 라면을 시켜서 먹었다. 매일 오후가 되면 몇몇 아이들을 불러내서 라면을 사곤했다. 며칠이 지나자 동네에… Read More »

[어릴 적에] 추억 시리즈를 시작하며

나도 늙었나 보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몇편의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을 해 본다. 모든 이야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이야기이다. 아래글의 제목들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또한 글 순서도 내가 쓰고 싶은대로 바뀔 수도 있다. 다만, 어릴 때의 추억들을 한번쯤 적어놓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적어두는 것이다. 저 자신을 위한 기록이라고 봐야 한다. 더우기 이 모든 것들은…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