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어릴 적에 ∙ 추억 시리즈 99

[어릴 적에. 30] 태권도와 사범아저씨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의신면 칠전리에 있던 외할머니댁에 갔다가 태권도를 처음 배우게 되었다. 지금은 서울에 사는 인자이모가 직접 만들어준 도복을 입고서 말이다. 오랫동안 외할머니댁에 머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주일 가량 배우다가 집으로 되돌아 왔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한 후에 방학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발표하던 중, 선생님(박하준 선생님 이야기에서 나오는)께서 시범을 보여달라고 해서 앞지르기와 앞차기를 교실 앞으로 나와서 했던 적이… Read More »

[어릴 적에. 29] 태호아저씨

우리집에서 왼쪽으로 돌아 골목으로 올라가면 세번째 집에 태호아저씨네 집이다. 아버지와 동갑내기여서 그런지 두 분이 참 친하셨다. 국장님네집과 우리집에만 전화가 있던 시절, 태호아저씨를 참으로 많이 부르러 갔다. 전화가 아주 자주왔다. 오늘날 처럼 전화를 사용하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다가 바꾸어주었지만 자주 전화 때문에 태호아저씨네 집을 가곤 했다. 마당에 들어서면 그 집에 보인다. 대문에서 보면 1시방향엔 방이, 2시 방향엔 마루와 안방문이… Read More »

[어릴 적에. 28] 무당의 굿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절에 다니셨다. 그리 정성스럽게 다니는 것은 아니었고 사월초파일이 되면 절에 다녀올 수준의 불자였다. 불경을 외우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절에 불을 켜고 비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또한 절에 갈 무렵에는 육식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언젠가 어머니가 머리가 너무 오랫동안 많이 아프다며 굿을 하기로 하셨다. 무당은 굿을 하기로 한 며칠 전에 집을 둘러보고… Read More »

[어릴 적에. 27] 옐로우와 헬로우

진도에는 진돗개가 있다. 당시에는 잡종견도 있었다(이 이야기는 “어느 잡종견의 추억“에 적은 바 있다). 모든 집이 진돗개를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지역보다고 개를 많이 키운다고 볼 수 있었다. 많은 개들이 있지만 그들의 대부분의 이름은 “백구”나 “황구”였다. 대부분의 집에서 “백구야~!” “황구야~!”하고 부르면 자신의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 달려가곤 했다. 우리집의 개들은 예외였다. 언젠가 황구(털이 갈색인)를 하나 샀는데 이름을 “옐로우(Yellow)”라고 붙였다.… Read More »

[어릴 적에. 26] 한양영배사

어릴 때 우리 동네에는 전기가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다. 당연히 TV도 없었다. 극장도 없었다. 그러나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몇달만에 한번씩 찾아오는 한양영배사 덕분이었다. 한양영배사는 말그대로 영화배급처이다. 마을의 넓은 땅에 천막을 두룬 일종의 가설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스크린은 외벽천막의 안쪽에 쳐지기 때문에 외부에서 영화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소리는 들을 수 있다. 한양영배사는 영화상영… Read More »

[어릴 적에. 25] 침을 두번 뱉은 기준이.

우리집에서 병식(가명)이네 집을 오른쪽으로 돌아 작은 길로 가면 기준이네 집이다. 기준이는 나보다 한살 많은 동네형이다. 홀어머니 밑에 남자형제들이 많은 집이다. 형제들 중 내가 기억하는 이는 이준과 기준이다. 이준이형은 아마도 큰 형이었던지 이준이 아저씨라고 불렀다. 정미소에서 일을 했었다. 기준이네는 내가 늘 들락거리는 곳이다. 우리집에 음식이 있으면 늘 가져다 주곤 했다. 기준이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우리집에서는 잘 챙겼었던 것… Read More »

[어릴 적에. 24] 우체국 교환원

우리 마을엔 우체국이 있었다. 면소재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체국이 있었다(나중에 우리가 이사갔던 금골리로 옮겨졌다). 우체국에는 우체부 아저씨 뿐만 아니라, 전화를 이어주는 전화교환원이 있었다. 지금처름 자동으로 연결되거나, 무선전화가 있던 시절이 아니다. 전화기에 있는 다이얼을 돌리면 교환이 나오고 “OO번을 대주세요”, “OO번 부탁합니다”, “OO네 부탁드려요” 등으로 표현했다. 처음에 우리집 전화번호는 7번이었다. 오직 한자릿수 전화번호만 존재했다. 그러던 것이 다니 두자릿수 전화번호로 바뀌었고, 나중에… Read More »

[어릴 적에. 23] 병직이 아저씨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에 자주 일을 하러 오시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바로 병직이 아저씨이다. 성은 모르겠고 이름이 “병직”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냥 우리는 “병직이아저씨”라고만 불렀으니 말이다. 그 아저씨는 둔전저수지(약 24만평 정도의 간척 저수지이다. 나중에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가에 살았다. 둔전저수지 근처에 몇몇 집이 모여 있었지만, 병직이 아저씨네 집은 그 집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집이었다. 세등리로 가는 커브길쪽 아래에 저수지 바로… Read More »

[어릴 적에. 22] 유자나무

내가 다녔던 금성초등학교는 금골산이라는 돌로 구성된 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금골산 아래에는 두 개의 절이 있다. 우리는 큰 절과 작은 절로 구분해서 부른다. 그 절이 있는 숲과 학교 사이에 밭이 있다. 그 밭은 원래 산이었으나 나무를 뽑고 밭으로 만든 곳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2년때 쯤 그곳에 유자나무를 심었다. 마을별로 유자나무 그루수를 할당받아 고학년에서 저학년까지 그 일에 참여했다. 삽질은 고학년들이… Read More »

[어릴 적에. 21] 교감선생님과 교감신경계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다. 박영희선생님이셨다. 갓 교대를 졸업하고 초임발령으로 오셨다. 문제는 1달 정도 가르치신 이후에 군입대를 해 버렸다. 학기중에 군대를 가버렸으니 새로운 선생님이 오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교감선생님께서 갑자기 담임을 맡으셨다. 교감선생님은 “박태삼교감”이셨다. 내 기억으로 신동리에 집이 있었고, 짧은 머리에 곳곳한 자세와 엄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말씀을 하실 때에서 뺨의 근육을 꽉 깨물고 하셨다. 1학기가…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