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교육 ② 교육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다.

By | 2012년 11월 2일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살던 시절, 가까운 PEI에 있는 Green Gables(빨간머리앤의 배경)의 산책로를 거닐며…]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이 “교육”이 아니었을까?한다. 아니 지금도 교육은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교육이야기를 정리해 보려고 마음을 먹고 ‘난 어떻게(교육적 측면에서) 아이들을 키웠지?’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지고 먼 기억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기록들을 나의 무의식속에서라도 꺼내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눈높이”였다. 아내와 저의 교육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는 일의 중요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까지 난 개인적으로 너무 바쁜 삶을 살아야했다. 내가 좋아한 부분도 있지만 실제로 내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토요일까지 수업이 있었는데 일주일 6일 중 3일을 해부학실습, 1일을 조직학실습, 그리고 너무 많은 강의를 감당해야했다. 더구나 2년간은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나 혼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치과대학 교수님과 부위를 나누어 강의를 해서 어느정도 해소는 되었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거기에 연구에 따른 실험을 하느라 퇴근을 11시전에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이들에게 지금도 미안해하는 부분이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포기할 수 없었던터라. 나름대로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갖긴 했지만 역시 많은 부분이 아내가 감당해야했던 부분이 매우 컸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아내와 함께 아이들의 교육의 방향과 교육에 대한 눈높이는 맞추고자 서로 노력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싸우는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서로의 철학이나 관점, 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너무 자주 보게 된다. 이런 갈등의 요소를 없애는 일은 자녀교육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내의 교육방식이 맘에 들지않고, 남편의 무관심이 화가 날 수 있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부부는 이런 부분에 대한 갈등의 요소들을 미리 예방하고 있었다. 서로 합의를 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아내와 제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교육 배제”와 “촌지 배제”였다. 아이들이 저학년일 때 주변의 강요(?)로 촌지를 건낸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촌지는 되돌아 왔다. 제대로 된 선생님을 만난 셈이다. 그 사건 이후로 초심을 잃었던 저희 부부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아직도 봉투도 한번 하지 않았느냐?”고 윽박지르던 어떤 학부모의 말에 그만 흔들리고 말았던 모습을 다시금 반성하게 된 셈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때 시험때만 되면 “엄마, 다른 아이들은 기출문제를 가져다가 풀던데 그것 봐야해?”라고 묻던 아이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시험때가 되면 학원에서 그런 자료들을 제공해 주었는데, 저희집 아이들에겐 기출문제를 풀게 한 적은 없었다. 물론 고등학교에 다닐 떄는 그런 문제를 구해서 스스로 풀긴 했겠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엔 그냥 자연상태(?)에서 시험에 임하게 했다.

따라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 것은 캐나다에 가기전에 보낸 피아노학원과 캐나다에서 되돌아와서 미술숙제를 위해 다닌 미술학원이 전부일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교육을 내버려둔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나씩 쓰기로 하겠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방향이나 눈높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점은 일관성있는 교육이 가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눈높이 맞춤은 부부가 많은 노력을 해야 된다. 많이 일치한다고 생각했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가 많이 다름을 느끼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자녀교육이야기

글을 시작하며

머릿말과 목차

제1장 자녀교육의 초보운전자
홈스쿨링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
교육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일정한 역치를 갖다.
아이들의 능력을 관찰하다.
우리 아이들은 영재가 아니다.
올100을 맞은 적이 없다.

제2장 조금씩 보이지만
참고 기다리다.
멀리 보고 뛰게 하다.
사춘기가 없었던 아이들.
과외는 필요악이다.
과감한 투자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모니터링과 샘플링
책을 읽는 것은 숙제가 아니다.
쉼이 필요해. 기계가 아니야.

제3장 자녀를 위해 기도하라
아이들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
신뢰보다 더 좋은 응원은 없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엄마의 수고가 가장 값지다
왜 아쉬움이 없을까
부모로서 보여주어야 행동들
기도가 필요한 이유

글을 마무리하며

“자녀교육이야기”를 모두 쓰고나서

 

2 thoughts on “아이들의 교육 ② 교육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다.

    1. 김형태

      박목사님,
      솔직히 많이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솔깃하는 주제이긴 하지만…
      글 재주도 없고…
      무슨 자랑을 하려고 쓴 것도 아니고…
      잘못 왜곡되어 해석될 수도 있고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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